2008년 10월 04일
[대학 교육, 이것이 문제다] (조선일보)
- [대학 교육, 이것이 문제다] 1 심각한 학력 저하
- 스스로 공부할 줄 모르는 '깡통'만 양산
- 서울대 자연대는 올해 1학기부터 수학·물리·생물·화학 과목에서 기초가 부족한 신입생을 선배 재학생이 지도하는 과목을 개설했다. 성적이 우수한 3~4학년 선배들이 ‘학부 조교생’이란 이름으로 신입생 5~10명을 맡아 가르치는 방식이다. 작년 처음 시도한 ‘신입생-학부생 일대일 튜터(tutor)제’를 정규 수업으로 편성한 것으로,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신입생들을 위한 고육책이다.
서울대 공대의 A 교수는 “학기 초마다 올해는 강의의 최저 수준을 얼마나 떨어뜨려야 하나 고민에 휩싸이곤 한다”면서 “대학 강의실에서의 하향 평준화가 어디로 도달할지는 자명하지 않냐”며 씁쓸해했다. 선다형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가 학생들이 깊이 생각하는 능력과 습관을 키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이제 구문(舊聞)이다.
대학생의 학력 저하 현상은 이공계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작년 7월 미국의 권위 있는 과학저널인 사이언스는 한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을 전했다. 명문 공과대학의 1학년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적분 기호를 가리키며 “저 표시가 무엇이냐”고 질문했기 때문. 처음에 황당해하던 교수는 학생의 질문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는 것이다. 사이언스는 ‘세계의 이공계 대학교육’이란 특집 기사에서 한국은 고교생의 3분의 2가 과학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고, 이를 위해 (대학에서) 보충수업을 운영해야 할 정도로 과학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소개했다.
사이언스는 우리 기초과학 부실의 원인을 정부 교육 정책의 판단 착오에 있다고 봤다. 1990년대 중반 입시부담을 덜어 학생들의 창의력을 높인다며 추진한 교육과정 개편이 수학과 과학에 대한 경시 풍조로 이어져 창의력은 물론 기초 학력도 챙기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서울대 김도한 교수는 “지금 다수 학생들의 실력은 1980년대 학생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은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대학에서는 과학에 정통한 청소년들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학부생 5명 중 1명은 보충 수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인문·사회 계열의 학력 수준도 나을 것이 없다. 과외와 학원 강의에 익숙해진 탓에 ‘자기주도적 학습’ 대신 ‘학원 중독’에 또다시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원전을 파고드는 대신 인터넷 서핑으로 짜깁기·베끼기 리포트가 양산 된다. 서울 소재 대학 도서관 5곳의 도서 대여 순위는 ‘깡통 대학생’들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이 된다. 가장 많이 빌려간 분야는 ‘판타지·무협소설(43%)’로, 순수 문학과 교양서적을 합한 15%의 3배에 육박한다. 일본 연애 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대중소설(23%), 자기계발서적(9%), 취미서적(7%), 기타 서적이 뒤를 잇는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추진되는 교육개혁은 좋은 시사점이 된다.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토리 교육(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여유있는 교육)’이 일본 교육을 망쳤다는 반성과 함께, 대학 모집정원이 늘어나며 ‘전원 입학 시대’에 접어들어 ‘출구 관리’의 필요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교육심의회는 대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익혀야 하는 ‘학사력(力)’을 제시하며 △지식·이해 △범용적 기능 △태도·지향성 △종합적 학습 경험과 창조적 사고력 등 4개 분야의 능력 향상을 주문했다.
/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현재기사 경로
기사 본문
- [대학 교육, 이것이 문제다] 2 기업들 "데려다 쓸 인재가 없다"
- 토익·자격증… 4년 내내 '스펙 만들기'만
- “공대 출신 신입사원이 전자제품 기판 회로도도 못 읽더라.”
올해 초 기업 인사담당자들 사이에서 회자됐던 얘기다. 문제가 된 신입사원이 나온 대학에선 회로설계가 선택 과목이었다. 학점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필요한 과목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입사원이 토익 990점인데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더라”는 이미 구문이 됐다. 삼성·LG·SK 등 대기업들은 토익 점수 커트라인을 두지 않고 입사 시험에 말하기를 도입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작년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 1인당 들어가는 양육비는 5865만원이다. 그렇게 돈을 들여 키워놨건만 정작 인력의 수요처인 기업에서는 “쓸 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작년 3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전국 532개 기업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년제 대학 인문사회계열 졸업자에 대해 70.3%가, 이공계열에 대해서는 57.9%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대답했다. 지난 5월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각국 경쟁력 평가에 있어서도 조사대상 55개국 중 한국의 고등교육 이수율(2007년 대학진학률 82.8%)은 세계 4위지만, 대학 교육이 경제·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평가는 세계 53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실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01~2006년 대학을 졸업한 근로자 1019명에게 대학 교육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60.3%가 ‘대학 교육이 기업의 요구를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데 대학교육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28.2%나 나왔다.
지난 1월 부산 해운대에서 열린 전국대학교 교무처장협의회에 초청 강연자로 나섰던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해야 한다”면서 △탄탄한 학부 기초교육 △수요자 중심의 전공경쟁력 △다(多)전공 인력 육성 △대학교육의 글로벌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현재 대학가는 이런 기업의 수요와는 달리 ‘스펙(spec·취업을 위해 필요한 점수·자격증 등을 의미)’ 만들기라는 ‘껍데기’ 교육이 유행하고 있다. 토익 점수 올리기나 자격증 따기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 ‘수강신청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학점이 잘 나오는 강의에만 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간판 따기’에 내몰리다 보니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기업들은 토익 등 영어 시험 점수가 정작 업무수행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외국어 공부에 대해 취업 준비생들이 하고 있는 과도한 투자는 사회적·개인적 차원에서 불필요한 낭비를 유발하는 측면이 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대학졸업자에 대한 재교육 부담은 기업이 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 신입사원 1인당 평균 재교육 비용이 대기업은 연간 4330만원, 중소기업은 2921만원에 달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2조8000억원의 재교육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교육협의회 관계자는 “대학과 기업 간의 수요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과 공동으로 기업이 참여하는 대학 학과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 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대학 교육, 이것이 문제다] 3 학력 인플레
- 너도나도 석·박사… 넘치는 고학력 실업자
- 군대를 마치느라 지방사립대를 늦깎이 졸업한 오모(28)씨는 작년 3월 서울에 소재한 명문대 공대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오씨는 “학점이 괜찮아 학부를 마치고 취업할 수도 있지만 박사 학위가 있으면 회사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며 “주위엔 취업이 안 돼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과 120명의 정원 중 50명 정도는 지방대 등 타 대학 출신이다”라며 “본교 출신들은 대부분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학을 하지만 타 대학 출신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기 위해 진학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의 석·박사 학위 취득자는 2000년 5만3300여명에서 작년 7만9100여명으로 48.3% 늘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학력 과잉 현상으로 인해 학생들의 기대와 달리 석·박사 학위가 있어도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지난 8월 초 있었던 청와대 인턴직원 모집에 석·박사만 91명이 몰렸고, 외환은행의 상반기 공채에는 70명 모집에 석·박사만 522명이 몰렸다. 작년 11월 KOTRA의 신입직원 모집에는 고학력자 우대가 전혀 없는데도 17명 정원에 석·박사 출신이 378명이나 지원했다.
우리 사회에 학력 과잉 현상이 본격화된 때는 김대중 정부가 1996년 ‘2차 교육개혁안’을 통해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부터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일정한 기준만 충족하면 학교 설립을 자유롭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대학의 설립은 늘고 퇴출은 거의 없어 대학 정원이 느는 결과를 보였다.
대학 정원이 늘어나면서 대졸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은 늘어났고, 그 결과 청년 실업자들이 양산됐다. 인력 수요 측면에선 외환위기 이후 소위 ‘괜찮은 일자리’가 줄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봉이 높은 ‘괜찮은 일자리’에 해당하는 1000명 이상 대기업 종사자가 1996년 145만3000여명에서 2006년 87만3000여명으로 39.9%나 줄었다. 실업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가 늘게 됐다.
작년의 경우 대학(전문대 포함) 졸업자는 52만5000여명인데 한 해 동안 늘어난 취업자 수는 28만2000여명에 불과했다. 대졸 인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많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학력 과잉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혜자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은 “장기간에 걸쳐 공교육과 사교육에 투자해 온 청년층으로선 평생소득과 고용안정을 고려하기 때문에 취업이 용이한 부문에 구직하기보단 양질의 일자리 진입을 위한 취업준비를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과 학생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로 여기는 의사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이나 문과 학생들이 고시나 공기업 입사에 매달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인적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정부는 오히려 역주행을 하고 있다. 올해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은 1641명으로 작년(804명)에 비해 103.9% 늘어났다. 내년 출발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총정원은 2000명으로 현행 사법고시 합격 인원(1000명 선)보다 늘어난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는 적어지는 데 반해 대졸자는 늘어나면서 학력 과잉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생산성 향상이 가능한 분야에 고급 인력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인력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방현철 기자 banghc@chosun.com- [대학 교육, 이것이 문제다] 4 우물 안 개구리 한국 대학
- 경쟁력 제로… '진짜 일류대' 있긴 있나
- ‘껍데기’ ‘빛 좋은 개살구’….
내실 없는 한국 대학교육을 가리키는 단골 수식어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8년 세계 경쟁력 연차보고서는 한국 대학교육의 실상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는 기회였다. 우리의 대학교육 순위는 조사대상 55개국 중 53위였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31위)보다도 낮았다. 국가경쟁력을 대학교육이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싱가포르의 대학교육 순위는 1위, 말레이시아와 홍콩은 15위권이다.
지난 7월에는 미국 박사학위 배출자 순위에서 서울대가 2004년부터 칭화대와 베이징대 등 ‘중국세’에 현격히 밀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1997년부터 10년 동안 미국 대학 박사학위 취득자의 학부 출신 대학을 조사한 결과 서울대가 3420명으로 미국 대학을 제외하고 가장 많았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들어 칭화대가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칭화대는 2004년 서울대를 제치고 해외 대학 중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에는 UC버클리까지 제치며 전체 1위에 올랐다.
2006년에는 칭화·베이징대가 나란히 전체 1·2위를 차지했다. 서울대는 4위. 한 명의 고급 두뇌가 수만 명을 먹여살리는 시대, 고급 인력의 확보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3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는 ‘대학 경쟁력 향상과 대학재정의 과제’ 포럼이 열렸다. 포럼 발표 자료는 서울대와 세계 10위권 대학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교수 1인당 SCI 논문 등재 수는 3.4편으로 10위권 대학(7.5편)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고, SCI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도 하버드대(35편)·버클리대(21편)·도쿄대(12편)에 크게 못 미치는 5편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17명으로 10위권 대학의 9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많았고, 학생 1인당 장서 수(113권)는 10위권 대학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외국인 학생·교수 비율 등 국제화 지표에서도 차이는 컸다.
지난 7월 전국 147개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대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와 전략’ 세미나에서는 우리 대학 사회에 만연한 순혈주의와 학문의 동종교배를 벗어나야 하며, 재정의 영세성을 벗어날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나눠먹기식’으로 이뤄진 대학 연구비 지원제도의 합리적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미국은 상위 3~5%의 대학이 선도적인 연구중심 대학의 역할을 한다. 한국도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수대학을 육성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한국 대학이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발돋움하지 못한 근본 이유는 재정이 영세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고등교육 발전에 대한 의지를 밝힌 만큼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내국세의 일정 비율을 고등교육 예산에 배정하자는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손병두 서강대 총장)
인력 수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려면 대학의 특성화와 전문화는 필수다. 최근 커리큘럼 통폐합, 엘리트 대학 지정·육성, 대학 자율화 등 강도 높은 교육 혁명을 진행하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대학 재학생들의 직업 능력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교육과정에 환류(feedback)하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 by | 2008/10/04 13:41 | 영어 및 교육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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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지식 하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깊이 깊이 숙고하는 자세를 가져야만, 참다운 지혜를 터득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현재 환경이 바람직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바른 길을 찾지 못한 아타까운 실정임을 어른들이 먼저 반성하고, 이를 시정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