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1일
중1 일제고사, 영어 1문제 틀려 320등 아이들에 ‘멍에’만
중1 일제고사, 영어 1문제 틀려 320등 아이들에 ‘멍에’만
[한겨레]
“영어 한 문제 틀리면 320등, 두 문제 틀리면 460등이라뇨? 이런 석차는 뭐하러 매깁니까? 아이들을 제대로 진단했다는 건가요?”
경기 지역 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어머니 김아무개(43)씨는 10일 자녀의 성적표를 내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6일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회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가 주관한 ‘전국 시·도 연합 중1 진단평가’ 성적표였다.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다섯 과목에 5지 선다형 객관식 25문항씩 출제돼, 전국 중1 학생 68만여명이 일제히 치렀다.
600명이 다니는 학교에서 김씨의 아이는 영어에서 한 문제를 틀렸다. 320등이다. 만점자가 319명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동점자가 140명이니까 두 문제 틀렸다면 460등으로 밀렸을 것이다.
아이는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수학이 문제였다. 다그쳐 확인해 보니, 네 문제 틀려 480등이다. 활달한 아이가 시무룩했던 이유가 짐작됐다. 김씨는 속상해 잠도 이루지 못했고, 등교하는 아이의 어깨가 축 처져만 보여 가슴이 쓰렸다고 했다.
시·도 교육감들이 지난해 전국 진단평가 시행에 합의하며 “학생의 학력 출발점 수준을 진단하고, 수준에 맞는 교수-학습방법으로 학력 신장을 도모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비교육적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학생들이 서로 등수를 비교하는가 하면 시험지 감추기, 성적 속이기 같은 ‘문제행동’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김씨는 “아이 실력을 진단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아이에게 상처만 줬다”고 했다. 한 교사는 “실수 때문에 학생들이 하위권이란 기억을 안고 지낼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한 중학교의 학생은 “못하는 애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고 부모님들께 혼나는지 어른들은 모른다”고 말했다.
경기 한 중학교는 운동부 학생 6명과 장애 학생 4명을 진단평가에서 뺐다. 이 학교 교감은 ‘평가전 대비 오후 연습’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학교간 성적 비교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역 한 중학교 교사는 “객관식 25문항으론 도저히 학생 개개인의 약한 영역이나 강한 부분을 파악할 수 없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의 학생 답안지 일괄 수거 방침에 항의했던 한 영어 교사는 “석차로 줄 세운다면, 학생들의 현 수준을 파악해 가르치는 데 활용한다는 진단평가 취지를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중1 학생 12만3천여명의 석차 백분율과 전교 석차 백분율을 매길 태세다. 다른 교육청들도 전교 석차나 석차 9등급을 매겨 통지할 방침이다. 이 때문에 교육과학기술부 주관으로 11일 전국 초등 4~6학년 학생들이 치를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두고도 학부모와 학생, 교사들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중등 교사)는 “석차를 통지하겠다는 것은 상대평가로 학생들을 더 점수 경쟁에 몰아넣을 것”이라며 “평가는 학습 부진아를 진단하는 유용한 도구도, 학생들을 낙인찍고 좌절하게 하는 무서운 도구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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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3/11 09:18 | 영어 및 교육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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