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인천 쪽방 이야기·2]쪽방촌의 하루

[2008 인천 쪽방 이야기·2]쪽방촌의 하루
태양도 희망도 늦게뜨고 일찍진다
2008년 01월 25일 (금) 김명호·김명래 boq79@kyeongin.com
  
 
 ▲ 24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9 한 쪽방. 10㎡(3평) 정도의 허름한 방 하나에 한 부부가 월 10만원의 월세로 거주하고 있다. 쪽방 앞 은 차가운 칼바람을 비닐로 막은 채 생계를 유지하기위한 작업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임순석기자·sseok@kyeongin.com 
 
  
쪽방촌의 하루를 시작하는 해는 늦게 뜨고 일찍 진다. 한쪽 팔만 뻗어도 앞집 창문에 닿을 수 있는 공간, 이 공간의 부피만큼 그들은 햇빛을 볼 수 있다. 23일 오전 6시 동구 만석동 2번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도로 하나 사이를 두고 건너편에는 만석동 9번지 일명 '아카사키촌'이 있다. 2번지 쪽방촌 초입인 만석다방과 삼오식당 사잇길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보안등이 설치 돼 있지만 쪽방촌 안쪽은 빛이 닿지 않아 칠흑같다. 그중 공중화장실 근처가 가장 밝다. 마을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은 쪽방 2~3개를 합쳐 놓은 크기로 가장 눈에 잘 띈다. 그렇다 보니 쪽방촌의 길찾기는 대부분 공중화장실 위치에서부터 시작된다.

3~4분쯤 걸었을까. 쪽방촌 한구석에서 김명희(가명·78) 할머니를 만났다. 화장실 문처럼 생긴 김 할머니네 쪽방 출입문을 열자 바로 10㎡ 가량 돼 보이는 방과 거실이 나온다. 신발을 출입문 밖에 내놓는 줄 알았더니 그냥 방 한편에 두란다. 집안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에 수북히 쌓인 부탄가스통들, 자세히보니 가스레인지가 없다. 할머니는 "한통에 1만5천원씩 하는 LP가스통을 사는 게 부담스러워 소형 버너에 밥을 해먹는다"고 했다. 벽면 도배지는 습기를 먹어 아래로 축 처져있고 방 한편에는 빗물이 흐를 수 있도록 만든 PVC관이 돌출 돼 있다. <관련기사 3면>

"한 40년 살았나… 그래도 아직 살만햐 . 4남매 중에 제구실 하는 자식새끼 하나 없으니 뭐 이렇게 사는거지"라며 할머니는 푸념한다.

2번지의 경우 홀로사는 할머니들이 많이 거주한다. 대부분 기초수급자거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들을 데리고 살고 있다.

이순정(82) 할머니도 그렇다. 큰아들은 중풍으로 병원에 있고 둘째아들은 사업실패로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막내 아들은 손가락이 2개밖에 없단다.

낮 12시 30분. 2번지와 9번지에 살고 있는 노인들이 2번지 경로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든다. 대부분 하루 2끼를 먹는 이곳 노인들은 점심의 경우 경로당에 나와 공동으로 해결한다.

쌀은 봉사 단체에서 보내준 것으로, 반찬은 각자 집에서 갖고 온 것을 모아 먹는다. 이날 점심 메뉴는 콩나물김치국과 명태코다리조림. 9번지 사는 최씨 할머니가 딸네서 갖고 왔다고 했다.

이렇게 점심을 먹은 쪽방 노인들은 노인정에서 화투를 치거나 낮잠을 잔다. 오후 4시가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온 이들은 6~7시까지 보통 TV를 보거나 저녁 준비를 한다. 그나마 TV를 볼 수 있는 채널도 1~2개로 고정돼 있다. 오래되거나 선이 낡아 나오지 않는 방송이 많기 때문이다.

오후 8시 쪽방촌 초입에 있는 삼오식당 문은 이미 내려졌고 조그만 창문 틈새로 군데군데 켜져 있는 불도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간간이 쪽방 출입문으로 TV 드라마 소리가 새 나오기도 한다.

2008년 겨울. 만석동 쪽방촌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2008 인천 쪽방 이야기·2] 숨겨진 사연들
우유·신문조차 사치
2008년 01월 25일 (금) 김명호·김명래 boq79@kyeongin.com
  
 
 ▲ 24일 오후 인천시 동구 만석동 9 쪽방촌의 '랜드마크' 공동화장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 사이에서 넓직한 공간을 차지한 채 우뚝 솟은 이 화장실이 쪽방촌에서 가장 튼튼한 건물로 송도의 고층 아파트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임순석기자·sseok@kyeongin.com 
 
쪽방촌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얘기와 사연은 종일 들어도 다 못들을 정도다. 6·25때 이 곳에 움막을 치고 살았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공동화장실 똥물이 넘쳐 마을에 냄새가 진동했던 사연까지,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 조각을 맞추다 보면 인천의 그늘진 곳이 보인다.

이런 옛 이야기뿐만 아니다. 고층 아파트와 대형 공장에 가려져 살고 있는 이곳 쪽방촌에는 고층 아파트와 널따란 마당을 가진 이들이 알지 못하는 단편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2008 쪽방촌 이야기' 그곳의 숨겨진 이야기와 삶의 단편들을 좇아 봤다.

■ 우유와 신문 배달원을 볼 수 없는 그곳
만석동 2번지 쪽방촌에는 일반 아파트 단지나 주택 현관에 매달려 있는 우유배달 주머니를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우유를 대놓고 먹지만 하루 2끼도 힘겹게 먹는 쪽방촌 사람들에겐 우유값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24일 오전 6~8시, 미로처럼 엉킨 쪽방촌 골목에서 배달된 우유나 신문은 눈씻고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곳에서 40년째 살고있다는 김정자(가명·81) 할머니는 "우유? 만날 김치쪼가리 하나 갖고 지져먹고 볶아먹는 사람들이 한달에 몇만원 되는 우유를 어떻게 대놓고 먹어? 그냥 사는 거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전 7시쯤 인근을 지나는 신문배달원에게 2번지 일대 신문이 몇부나 들어가냐고 묻자 "경로당에 지방지 2개랑 또…"라며 말 끝을 흐렸다.

우유와 신문. 이 곳 사람들에겐 아침을 상징하는 이 두 가지가 빠져 있다.

■ 쪽방촌의 '랜드마크' 공동 화장실
쪽방촌의 '랜드마크'는 단연 공동 화장실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 사이에서 널찍한 공간을 차지한 채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송도의 고층 아파트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쪽방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어 사람들은 이 공동화장실을 이용한다. 그러나 2번지 쪽방촌 공동화장실의 경우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매월 2천원씩 받고 매일 화장실 청소며 정화조 푸는 일 까지 도맡아 왔던 최모씨 할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이 곳을 따로 관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번지 공동화장실 문을 열자 악취와 함께 여기저기 널려있는 휴지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웃기지… 화장실이 우리동네에서 제일 좋아. 옛날에는 만석부두 만조때만 되면 푸세식 변소 똥물이 넘쳐 온 동네가 똥바다 였는데 말여." 한 할아버지의 농담섞인 말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 못사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있는 보건소
월 20만원 가량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이 곳 사람들에겐 병원가는 일이 가장 두렵다. 대부분 관절, 허리, 고혈압 등 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어 일주일에 두번꼴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하지만 인근에 있는 보건소에서 침 맞고 진통제 몇알 가져다 먹는 게 전부다. 그래도 보건소 시설이 좋아져 다행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최근들어 보건소 기능이 예전 서민들을 위한 무료치료 기능에서 금연, 비만, 치매 등 예방의학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어 이 곳 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동구보건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인구에 비례해 모든 보건소가 똑같은 예산을 받았지만 몇년전부터 보건소끼리 경쟁을 붙여 예방의학 관련 비중이 높고 이 분야 활동이 왕성한 보건소에 대해서만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 각 보건소들이 예방의학 쪽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쪽방촌 경로당의 공동체 문화
2번지 사람들은 점심을 경로당에서 모두 같이 먹는다. 지난해 부터 이렇게 먹었다고 한다. 주로 2번지와 9번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하루에 20~30명씩 이 곳에서 밥을 해결한다. 식사 당번은 경로당에서 젊은이축에 끼는 60대 초·중반 노인들이 전담한다. 때론 김치하나 놓고 밥을 해먹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같이 먹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점당 10원짜리 고스톱을 쳐도 경로당 한편에 있는 저금통에 있는 돈으로 친다. 끝난 후에는 모든 돈을 회수해 다시 저금통에 넣는다. 잃는 사람도 따는 사람도 없는 고스톱이 돼버린 셈이다.

없는 사람들끼리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공동체 문화가 형성됐다는 것이 이곳 주민들의 얘기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쪽방촌 사람들의 삶. 이들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원천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by 영탁이 | 2008/01/25 09:45 | 인천, 인천, 인천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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